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신뢰할 수 없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 === 가장 큰 문제는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이 아프간 주민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는데 있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호해준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고 동시에 이슬람 문화와 같은 파병 주둔국 지역의 문화적 이해가 서툰 미군이기 때문에 문화적 충돌에 의한 불신을 키운 점이 있다. 물론 현지인들의 [[이슬람주의]]적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국은 무슬림 국가가 아니면서 이슬람 세계의 일부인 아프간을 침공해온 국가이므로 미국 편에서 같은 무슬림인 탈레반과 전쟁하는 것은 배교자이자 불신자들의 행위로 선동되지만, 반면 미군에 협조하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및 친정부 민간인을 공격하는 행위는 [[타크피르]]주의를 통해 정당화된다. 아랍 무슬림들과 대치하는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지지하고 있는게 미국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은 이슬람 세계에 속하지 않은 나라인데 무슬림들의 세계 일부인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해 좌지우지하려고 하니 무슬림들의 세계관에 정통으로 반하는 국가인 셈.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로코 등은 이슬람권 전역에 혁명을 수출하려고 시도하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화해를 시도하는데도 부도덕하다는 비난은 퍼부어도 사우디나 모로코를 곧장 적대하는 이슬람 국가가 드물듯이 등 같은 친이스라엘 국가라도 이교도라면 무슬림들은 훨씬 민감하게 여긴다.]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산지 지역과 다르게 오히려 수도권인 [[카불]] 지역은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세속적이다. 물론 탈레반이 처음 등장했을 때야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얻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각종 오락을 금지하고 여성의 교육은 물론이고 과부들이 먹고살길을 봉쇄하는 등의 막장짓거리로 민심을 잃고 있었고, 미군이 아프간을 점령했을때는 처음에는 오랜만에 오락물 즐겨봐도 별다른 처벌이 없어졌다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라크 전쟁]](2003 ~ 2012)도 참고. 이라크도 초반 바그다드를 미국이 장악하고 후세인을 몰아내자 엄청 기뻐하고 미군을 환영했다. 하지만 미군이 저지르던 무수한 병크로 인하여 후세인도 극단주의도 싫지만 미군도 싫다며 저항세력으로 간 이들도 많다.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처음엔 미군을 반겼지만, 그들의 실망스런 행보에 마음을 돌렸다고 직접 밝혔다. 이처럼 미군이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장악에 큰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미군이 [[채명신]] 장군처럼 '''고보이 정신'''을 받아들였으면 모를까. 사실 '''탈레반을 미국이 크게 뿌리뽑았을 결정적 기회를 이라크 전쟁으로 날려버린 거야말로 가장 큰 이유'''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당시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느라 이걸 더 부추겼고 더욱이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져서 아프간은 뒷전이었다보니 탈레반이 급격하게 세를 성장하여 주민들을 위협하며 협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아프간 주민들이 과연 결국엔 떠날 미군을 믿고 지원할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군은 이라크로 빠져나가며 가득이나 부족한 병력에서 더 줄어든 병력으로 아프간을 통제해야했다. 남아있는 10산악사단이 유일한 사단급 부대였으며 08년도까지 미군병력만 약 5만명이 안되는 전력으로 아프간에서 탈레반과 싸우고 있었다. ISAF병력까지 합쳐봐야 10만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또한 [[레드윙 작전]]처럼 소수의 특수전 병력과 항공폭격을 통한 타격을 시도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민간인들 희생도 대량으로 초래했다는 점이다. 항공지원에는 당연히 지원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게릴라전에서는 그렇게 효율적이라 할 수 없었다. C4I체계가 원활한 미군도 이건 마찬가지이다. 이는 탈레반을 몰아내고 나서 소탕을 진행할때 나타났던 한계[* [[럼스펠드]] 문서에서도 언급이 있지만 병력이 없다보니 탈레반 주력부대와 추종 집단(빈라덴 포함)이 물주인 파키스탄으로 도망을 치는 데도 포위섬멸하지 못하고 그대로 놓아주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 실책이 아프간 통제실패와 탈레반이 아프간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당시 미군의 지상군 병력은 특수전병력 100여 명이 전부였다.]가 그대로 이미 노출되어있음에도 병력투자를 죽어도 안하려고만 하는 [[럼스펠드]] 체제의 고집 때문이었다. 럼스펠드는 미군의 구조조정을 위하여 철저한 외주화와 소규모 병력개입을 고집했다. 그렇다보니 항공폭격만 했다하면 마을 주민들이 떼로 죽어 주민들이 미군이라고 하면 학을 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미군 동조자는 날이 갈수록 줄고 탈레반 동조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괴상한 구도가 되었다. 아프간 현지 문화에도 불친절해서 민심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질적인 병력 부족으로 치안유지도 제대로 못하는 미군과 다수의 무장세력 간의 내전(?)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미군은 대민작전에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전쟁 초기 [[파슈툰어]] 통역사를 고용하는 데 인색했다. 이라크에서 갖은 삽질을 하느라 병력부족으로 증원도 못하고 있다가 이라크 철군 결정을 내리는 오바마 행정부 때에 와서야 변화가 생기긴 했다. 병력투자가 다시 이루어졌지만 상황 반전은 매우 어려웠다. 더 문제인건 이라크전에는 40만 병력 투자가 요구되었던 것에 비해 아프간 주둔 총병력은 09년도부터 1차 1.7만명, 2차 3만명 증원이 이뤄진 후에도 최대 12만명 내외였다는 사실이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병력부족은 여전했다. 그래도 소련 정권은 그나마 이념적 동조자를 모을 수가 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건데 소련이 철군하고도 90년대 중반까지 그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신론적인 사회주의 세력이 남아서 탈레반이라든지 각종 군벌과 죽어라 싸웠다.[* [[도스툼]]의 휘하로 들어가지 않은 인민민주당의 잔당들은 끝까지 항전했다.] 괴뢰정부군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소련군과 연합작전도 가능했지만, 미국이 조직한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이나 북부동맹을 제외하면 이념적 동조자도 모을 수 없고, 정부군은 말할 수 없이 개판 상황이다. 교육을 받았으면 장교. 글을 읽을줄 알면 부사관. 나머지는 병사 이렇게 수준을 뽑고 있는 상황이다. 마치 [[6.25 전쟁]] 당시 [[갑종간부후보생|갑종장교]]나 [[을종간부후보생|을종하사관]]과 유사하다. 창설초기나 지금이나 거의 다를게 없는 상황이고 미군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으니 미국이야말로 더욱 [[진퇴양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